[Prices] Consumer Price Index(CPI) - 2

美경제지표 2011. 5. 25. 08:54 Posted by sloan_sjchoi
지난번에 이어 미국 CPI에 대한 설명을 이어가겠다. 아래의 BLS(Bureau of Labor Statistics)에 직접 들어가 보길 권한다.

CPI-U vs. CPI-W
미국 CPI는 우리나라와 달리 두 개의 다른 인구그룹(Population group)별로 구분하여 발표된다. Wage workers와 clerical workers만을 대상으로 발표되는 CPI는 CPI-W, wage workers와 clerical workers 뿐만 아니라 professionals, the self employed, managers, technical workers와 short-term workers 등의 모든 도시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발표되는 CPI는 CPI-U이다.

노동부 자료에 의하면 CPI-W가 전체 consumer의 32%를 차지하는 반면 CPI-U는 거의 90%에 가까운 커버리지를 보여주기 때문에 그 중요도가 훨씬 높다. 우리가 신문에서 보는 CPI도 당연히 CPI-U이다.The CPI for All Urban Consumer이다.
* CPI-W = CPI for Urban Wage Earners and Clerical Workers

그냥 CPI-U만 발표하면 되지 뭐 귀찮게 CPI-W를 따로 발표할까 생각해도 무리가 아니다. Wage workers가 통상 블루칼러 노동자, Clerical workers가 화이트칼러 노동자를 지칭한다고 하면 CPI-W는 사무실이나 공장에서 일하는 급여 노동자의 물가지수라고 볼 수 있다. CPI-W는 노사관계에 있어서 단체협약(Collective Bargaining Agreements)이나 Social Secutiry Check 지급의 소위 Benchmark 역할을 한다. 다 쓸데가 있는 법이다.

* 120페이지 가까운 보고서의 목차를 보면 CPI-U와 CPI-W가 각각 발표됨을 알 수 있다. 신문에 나오는 CPI는 뭐다? CPI-U임을 기억하고 넘어가자.

BLS 사이트에서 CPI 보고서를 찾아보면 목차 다음 첫번째 페이지에 나오는 내용이 Consumer Price Movements이다. 간략한 해설과 Headline CPI와 Core CPI의 전월비, 전년동월비 변화를 알 수 있다. 일단 이 숫자가 가장 중요한 숫자이다.

* '11년 4월의 CPI가 전년동월비 3.2% 상승했으며, food와 energy를 제외한 Core CPI는 전년동월비 1.3% 상승했음을 알 수 있다. CPI 상승의 주요 원인은 Gasoline, Fuel oil의 상승이 주도했음도 sub category를 통해서 파악할 수 있다.

아래처럼 친절하게 전년동월비(yoy) 추이도 보여준다.



미국채10년과 CPI 전년동월비의 관계도 첨부하니 참고하라. 물가의 변동성이 금리보다 더 크기는 하나 두 변수는 방향성에 있어서 높은 상관성을 보여준다.


아래는 Core CPI와 미국채10년의 관계이다. 변동성이 훨씬 줄었다. 왜 Core 보는지 알겠는가?


지금까지 미국CPI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아래에 '11년 4월 CPI Detailed Report를 첨부하니 실제 한번 읽어 보기를 바란다.


[Prices] Consumer Price Index(CPI) - 1

美경제지표 2011. 5. 24. 21:16 Posted by sloan_sjchoi
피셔방정식(명목금리 = 실질금리 + 기대인플레이션)을 기억할 것이다. 명목 금리를 다루는 채권 매니저 입장에서 명목금리의 반을 결정하는 인플레이션의 현수준이나 향후 전망은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너무나도 중요하다. 앞으로 3편 정도는 미국의 물가지표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사실 물가를 커버하는 지표는 아주 많다. 여기서 설명할 CPI를 제외하고도 PPI, PCE, import prices, labor costs, GDP deflator 등이 모두 인플레이션을 측정하는 지표이다. 다들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예: GDP deflator는 매우 포괄적인 물가 지표이지만 발표 빈도가 분기라 적시성 떨어짐, PPI는 도매 수준에서의 물가만 측정하고 대부분의 서비스 원가 정보는 포함하지 않음.) 무엇이 100% 좋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미국 경제에서 서비스업의 비중을 생각하면 CPI가 가장 중요한 물가 지표라고 주장하더라도 크게 무리는 없어 보인다. "물가 = 생활원가(cost of living)"의 관점에서 볼때 CPI가 가장 피부에 와 닿는 물가지표임은 부인할 수 없다.

[채권ABC]에서 한국의 소비자물가지수를 2편에 걸쳐서 설명하였고 물가지수 구성항목들이 국가간 비교 가능성을 위해서 ILO에서 권고하는 분류체계인 COICOP를 따르고 있기 때문에 한미간 CPI 측정방법의 차이는 크지 않다. 따라서 중복되는 내용은 생략하고 차이점 위주로 설명하겠다.

구성항목의 차이
한국의 CPI 구성항목은 12개로 크게 구분할 수 있는 반면 미국 CPI는 8개의 major group으로 구분한다. 어차피 살만한 나라에서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항목들이 다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에 분류상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래도 한번 mapping 해보자.


차이를 보면 한국의 12개 항목중에서 3개 항목인 주류 및 담배, 가정용품 및 가사서비스, 음식, 숙박이 미국 CPI 8개 항목에서는 빠진다. Food, Others goods, Housing 등에 통합되어 집계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 CPI는 교육, 통신 항목이 구분되어 있지만 미국 CPI에는 Education and Communication 한 항목으로 분류되어 있다.
 
비중 측면에서 눈에 띄는 특이한 점은 한국에 비해 미국의 Housing 비중이 월등히 높다는 점과 한국의 교육/통신비 비중이 미국에 비해 높은 반면, 교통비 비중이 낮다는 점이다.

먼저 Housing 비중의 차이는 한국 CPI는 자가주거비를 제외하는 반면 미국은 자가주거비를 포함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제외하는 이유는 주택의 자가수요 목적의 차이에 기인하는데, 한국은 실 주거 목적 보다는 투기적 목적의 주택 자가 수요가 많기 때문에 인플레이션 상황하에서는 거래 가격에 거품이 발생할 수 밖에 없고 이는 CPI의 왜곡을 초래한다. 자가주거비 제외로 인해 CPI 구성항목에서 주거비의 비중이 미국보다 낮은 것이다.

교육비와 교통비 비중의 차이는, 직관적으로 한국 국민들의 교육비 비중이 높다는 점과 저렴한 대중교통비용이 그런 차이의 원인일 것이라 생각하는데 다른 의견이 있으면 댓글 달아 주시라~ 

[5월] 유동성

채권시황 2011. 4. 29. 17:13 Posted by sloan_sjchoi
4월 시황 제목이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을 보자"였다. 3월말에 4월중 주가 조정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반사이익으로 4월 중 금리가 내려갈 것이라는 전망으로 쓴 글이었다. 그리고 4월말에는 유동성이라는 제목으로 5월 전망의 화두를 정했는데 지금까지 글을 쓰지 못했다. (다시 쓰는 날: 5/24일 사장님과 저녁 먹고 돌아와서)

공교롭게도 5월에 주식시장이 본격적인 조정 장세를 시현하였다. 2200을 넘어가던 KOSPI가 150pt 이상 하락하였고 환율도 다시 1100원선을 상회하였다. 이에 채권시장은 10-6이 3.60%를 하회하는 강세장을 시현하고 있고 10-3은 4.30%아래에서 거래되는 등 커브도 많이 flat 해졌다. 한달 늦게 예상이 적중한 셈이다. 포트폴리오 운용성과도 그리 나쁜 편은 아니다. 10-5, 10-3 보유 물량 일부를 정리하고 추가 하락의 룸이 제한적인 10-2 보유물량 상당부분을 처분하였다.

문제는 앞으로인데...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제는 금리 상승에 준비할 단계가 아닌가 싶다. 자세한 내용은 6월 전망에 쓰겠지만 - 사실, 5월을 그냥 넘기려니 꾸준함이라는 나만의 원칙에 위배되어 억지로 지금 이 글을 쓰는 측면이 있다. - 10-6 기준, 2.9%에서 4.1%까지 오른 지표금리가 3.6%까지 내려왔으면 급등에 따른 반 정도의 되돌림이 서서히 마무리 되고 있다는 아주 비과학적인 느낌이 하나의 이유이고.

그리스 채무재조정을 빌미로한 글로벌 경기 우려의 재점화가 오히려 선진국의 완화적 통화정책을 더 오랫동안 유지시켜줄 수 있을 것이고 이에 따른 위험자산의 선호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 곧 채권 등 안전자산 수요 감소와 상품가 상승으로 인한 물가 불안 요인을 다시 가중 시킬 수 있을 것이라느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완화적 통화정책 --> 위험자산 선호 지속 --> 금, oil 등 수요 지속 --> 주가 상승 --> 채권 가격 하락... 뭐 이런 도식적 mind flow를 향후 기대해 본다. 자세한 내용은 6월초에 다시 올리겠다.
 
바쁜 5월이었다.
앞서 설명한 Consumer Confidence Index와 함께 로이터-미시간大 Consumer Sentiment Survey도 대표적인 소비자 심리 지표이다. 둘다 소비자의 심리 상태를 조사하여 발표하지만 종종 다른 결과가 도출되기도 하는데 이유는 Conference Board가 주로 고용 상황에 대한 질문의 답변을 바탕으로 보고서를 작성하는 반면 U of Michigan은 주로 개인의 재정이나 소득 상황에 중점을 둔 질문에 대한 답변을 근거로 보고서를 작성하기 때문이다.

사실 노동시장은 경제의 변화를 재빨리 반영하지 못한다. 경기회복이 시작되는 시점에 주가가 반등하고 소비자들의 씀씀이가 늘어나는 것이 눈에 보이지만 실업률은 여전히 높은 상태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생각해보면 그럴 법도 하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경기가 좀 살아나서 일손이 부족한 경우에 사람을 바로 늘리기 보다는 야근을 시키고 월급을 조금 더 주는 편이 간편할 것이다. "내가 채용해봐서 아는데" 사람 뽑고 해고하고 이런게 쉬운일은 아니거든...

그렇기 때문에 Consumer Confidence Index, 로이터-미시간大 Consumer Sentiment Survey 둘 다 소비자의 미래에 대한 태도를 조사한 지표이지만 Conference Board의 신뢰지수 대신에 University of Michigan 소비자신뢰지수가 美경기선행지수의 구성항목으로 들어가 있다.

<참고: Index of Leading Economic Indicators(LEI) components>
1. Average hourly workweek in manufacturing
2. Average weekly initial claims for unemployment
3. Manufacturers' new order for consumer goods and materials
4. Vendor performance, or delivery times index
5. Manufacturers' new order for nondefense capital goods
6. Building permits for new private homes
7. Index of consumer expectations by the U of Michigan
8. Stock prices based on the S&P500 stock index
9. M2 money supply in real terms
10. Interest rate spread between the 10yr Treasury bond and the federal funds rate

질문의 내용은 Consumer Confidence Index의 time horizon이 6개월인 반면 U of Michigan Survey는 아래의 질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1년에서 5년까지 확대된다. 질문지의 핵심 질문 5개만 소개한다.

<5 Core questions>
1. 너나 너의 가족의 삶이 1년 전보다 재정적으로 개선되었느냐?
2. 1년 후에는 어떨거 같어?
3. 앞으로 1년 동안 재정적으로 좋은 시절을 보낼 거 같어?
4. 개인적인 차원말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앞으로 5년동안 좋을거 같어?
5. 내구재(가구, TV, 냉장고 등) 사기에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해?

U of Michigan 신뢰지수는 매달 두번씩 발표되는데 잠정치가 월중반에, 확정치가 매월 마지막주 금요일에 발표된다. 최근의 숫자들을 살펴보면서 마치겠다. 

* Consumer Confidence Index가 질문지를 매달 100% 다른 사람에게 배포하고 정보를 취합하는 반면 U of Michigan Survey는 60%는 새로운 사람들에게 40%는 지난 달에 답변한 동일한 사람들에게 질문지를 배포한다. 그래서 전자의 경우 mom으로 후자에 비해 숫자가 튀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실제로 한 20년 추이를 보니 오히려 U of Michigan 신뢰지수의 월별 변동폭이 더 큰것 같다.


소비자의 미래에 대한 전망이 좋으면 소비증가, 기업이익 상승 등 경기 전반에 좋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 recession이 호재인 채권시장에는 신뢰지수의 상승이 달갑지 않은 정도 알고 넘어가자.

 

[Consumer Confidence] Consumer Confidence Index

美경제지표 2011. 4. 25. 15:45 Posted by sloan_sjchoi
소비자신뢰지수 또는 소비자동향지수로 해석되는 이 지표는 민간경제조사기관인 Conference Board가 매월 약 5000 가구를 대상으로 고용이나 소비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행하여 발표하는 지표이다. 대표적인 질문은 아래의 5가지 정도이다.

- 질문 -
1. 현재 경기 수준은 어떤가? Good, Normal, Bad
2. 6개월 후 경기는 어떻게 될 것으로 예상하는가? Better, The same, Worse
3. 현재 고용시장은 어떤가? Plenty, Not so many, Hard to get
4. 6개월 후 고용시장은? More jobs, The same, Fewer jobs
5. 6개월 후 너의 소득은 어떻게 될 것으로 예상하는가? Higher, The same, Lower

5000 가구에 이 설문지를 뿌리면 앞서 설명한 서베이와 유사하게 처음에는 대략 반정도만이 응답을 해오는데 Conference Board는 이를 바탕으로 매달 마지막 화요일 오전 10시에 Preliminary number를 발표한다. 다음달에 1000가구 정도를 더 조사하고 지난달에 뿌린 5000가구 설문지 중에 늦게 도착한 애들을 모아서 Revised number를 공표한다. (http://www.conference-board.org/data/consumerdata.cfm)


주가와 연동하는 그래프를 보여주면서 이번 지표 해설을 마치고자 한다. 사족이지만 이 지표도 좋게 나오면 주식에는 좋고 채권에는 별로다.


* 2000년 이후 Dow와 Consumer Confidence Index의 추이이다.

[Consumer Spending] Retail Sales

美경제지표 2011. 4. 14. 15:23 Posted by sloan_sjchoi

우리는 앞에서 개인의 소비 즉, Consumer Speding이 미국 경제 활동의 약 70% 가까이를 차지한다고 배웠다. (혹자는 테이블의 4개의 다리 중에서 3개에 해당하는 다리를 제외하고 나면 책상으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얘기하면서 소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여기서 다루게 될 Retail Sales도 개인의 소비활동에 대한 지표이다. 그러나 Retail Sales는 소위 "Goods"에 쓴 돈만 집계하기 때문에 "Service"에 지출된 돈은 제외되어 Consumer Spending보다는 작은 영역의 경제활동을 설명하는 변수이다. 즉, Consumer Spending에는 포함된 항공료, 이발, 보험, 공연 관람료 들은 Retail Sales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개인의 지출에서 2/3이상을 차지하는 서비스 부분이 포함되어 있지 않는 지표임에도 불구하고 Retail Sales가 중요한 이유는 발표 시기가 빠르기 때문이다. Personal Income과 Spending이 매월 4주차에 발표되는 반면 이 지표는 2주차에 발표되기 때문에 정보의 적시성에 있어서 훨씬 더 유용한 지표로 간주된다. (http://www.census.gov/retail/#mrts)


매월초 상무부 산하 Census Bureau에서 랜덤하게 5000개 정도의 크고 작은 소매업자들을 대상으로한 서베이에서 자료를 수집해서 1차 보고서를 만든다. 통계에 의하면 응답률이 50%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정확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처음 발표되는 보고서의 이름 앞에는 "advance"가 붙어 있다. -> Advance Monthly Sales for Retail and Food Services
 
Advance report를 발표한 후 8000개 정도의 업자들을 더 추가한 뒤 좀 더 자세한 자료를 만드는데 이 지표가 Preliminary version이라고 한다. 한달 후에 다음달 Advance report와 함께 발표된다.


*1 '11년 4월 13일에 발표된 Retail Sales를 보면 3월 Advance report가 왼쪽 칼럼에, 2월의 Preliminary가 두번째 칼럼에 발표됨을 알 수 있다. 

*2 위의 표에서 주의해서 봐야할 항목은 Total(excl. motor vehicle & parts)이다. 차량과 관련된 소매판매의 비중은 통상 전체 sales의 25% 이상이나 매월 변동성이 매우 크다. 따라서 소매 판매와 관련되 트렌드를 파악하기에는 자동차 관련 판매를 제외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3 '11년 3월 소매판매 증가에서 특이할 사항은 Gasoline Stations의 숫자이다. 작년 3월 최종결과에 비해서 16.7% 상승했는데 유가 상승이 상당부분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許生傳

斷想 2011. 4. 11. 18:43 Posted by sloan_sjchoi

허생전은 연암 박지원의 소설로 18세기에 살던 박지원이 17세기 효종 때를 배경으로 쓴 작품이다. 나는 이 작품을 참 좋아한다. 한양 제일의 부자 변씨가 허생에게 돈 만냥을 빌려준 뒤 한 말과 허생과 이완 대장의 대화는 언제나 즐겁고 명료하고 통쾌하다.

어려운 문제, 풀리지 않는 고민들의 해답은 대체로 너무나 심플하고 확실하다. 다만, 답을 알아도 답대로 할 수가 없는 것이 문제일 뿐. 요즘 참 답답하다. 답이 있는데 그 답은 답이 아니다.

[본문]

허생은 묵적골(墨積洞)에 살았다. 곧장 남산(南山) 밑에 닿으면, 우물 위에 오래 된 은행나무가 서 있고, 은행나무를 향하여 사립문이 열였는데, 두어 칸 초가는 비바람을 막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허생은 글읽기만 좋아하고, 그의 처가 남의 바느질 품을 팔아서 입에 풀칠을 했다.
하루는 그 처가 몹시 배가 고파서 울음 섞인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평생 과거(科擧)를 보지 않으니, 글을 읽어 무엇 합니까?"
허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아직 독서를 익숙히 하지 못하였소."
"그럼 장인바치 일이라도 못 하시나요?"
"장인바치 일은 본래 배우지 않았는 걸 어떻게 하겠소?"
"그럼 장사는 못 하시나요?"
"장사는 밑천이 없는 걸 어떻게 하겠소?"
처는 왈칵 성을 내며 소리쳤다.
"밤낮으로 글을 읽더니 기껏 '어떻게 하겠쏘?' 소리만 배웠단 말씀이오? 장인바치 일도 못 한다, 장사도 못 한다면, 도둑질이라도 못 하시나요?"
허생은 읽던 책을 덮어놓고 일어나면서,
"아깝다. 내가 당초 글읽기로 십 년을 기약했는데, 인제 칠 년인걸……."
하고 휙 문 밖으로 나가 버렸다.

허생은 거리에 서로 알 만한 사람이 없었다. 바로 운종가(雲從街)로 나가서 시중의 사람을 붙들고 물었다.
"누가 서울 성중에서 제일 부자요?"
변씨(卞氏)를 말해 주는 이가 있어서, 허생이 곧 변씨의 집을 찾아갔다. 허생은 변씨를 대하여
길게 읍(揖)하고 말했다.
"내가 집이 가난해서 무얼 좀 해 보려고 하니, 만 냥(兩)을 뀌어 주시기 바랍니다."
변씨는 "그러시오." 하고 당장 만 냥을 내주었다. 허생은 감사하다는 인사도 없이 가 버렸다. 변씨 집의 자제와 손들이 허생을 보니 거지였다. 실띠의 술이 빠져 너덜너덜하고, 갖신의 뒷굽이 자빠졌으며, 쭈그러진 갓에 허름한 도포를 걸치고, 코에서 맑은 콧물이 흘렀다. 허생이 나가자, 모두들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저이를 아시나요?"
"모르지"
"아니, 이제 하루 아침에, 평생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만 냥을 그냥 내던져 버리고 성명도 묻지 않으시다니, 대체 무슨 영문인가요?"
변씨가 말하는 것이었다.
"이건 너희들이 알 바 아니다. 대체로 남에게 무엇을 빌리러 오는 사람은 으레 자기 뜻을 대단히 선전하고, 신용을 자랑하면서도 비굴한 빛이 얼굴에 나타나고, 말을 중언부언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저 객은 형색은 허술하지만, 말이 간단하고, 눈을 오만하게 뜨며,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재물이 없어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해 보겠다는 일이 작은 일이 아닐 것이매, 나 또한 그를 시험해 보려는 것이다. 안 주면 모르되, 이왕 만 냥을 주는 바에 성명은 물어 무엇하겠느냐?"

허생은 만 냥을 입수하자, 다시 자기 집에 들르지도 않고 바로 안성(安城)으로 내려갔다. 안성은 경기도, 충청도 사람들이 마주치는 곳이요, 삼남(三南)의 길목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대추 밤 감 배며, 석류 귤 유자 등속의 과일을 모조리 두 배의 값으로 사들였다. 허생이 과일을 몽땅 쓸었기 때문에 온 나라가 잔치나 제사를 못 지낼 형편에 이르렀다. 얼마 안 가서, 허생에게 두 배의 값으로 과일을 팔았던 상인들이 도리어 열 배의 값을 주고 사 가게 되었다. 허생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만 냥으로 온갖 과일의 값을 좌우했으니, 우리 나라의 형편을 알 만하구나."
그는 다시 칼, 호미, 포목 따위를 가지고 제주도(濟州島)에 건너가서 말총을 죄다 사들이면서 말했다.
"몇 해 지나면 나라 안의 사람들이 머리를 싸매지 못할 것이다."
허생이 이렇게 말하고 얼마 안 가서 과연 망건값이 열 배로 뛰어올랐다.
허생은 늙은 사공을 만나 말을 물었다.
"바다 밖에 혹시 사람이 살 만한 빈 섬이 없던가?"
"있습지요. 언젠가 풍파를 만나 서쪽으로 줄곧 사흘 동안을 흘러가서 어떤 빈 섬에 닿았습지요. 아마 사문(沙門)과 장기(長崎)의 중간쯤 될 겁니다. 꽃과 나무는 제멋대로 무성하여 과일 열매가 절로 익어 있고, 짐승들이 떼지어 놀며, 물고기들이 사람을 보고도 놀라지 않습니다."
그는 대단히 기뻐하며,
"자네가 만약 나를 그 곳에 데려다 준다면 함께 부귀를 누릴 걸세."
라고 말하니, 사공이 그러기로 승낙을 했다.
드디어 바람을 타고 동남쪽으로 가서 그 섬에 이르렀다. 허생은 높은 곳에 올라가서 사방을 들러보고 실망하여 말했다.
"땅이 천 리도 못 되니 무엇을 해 보겠는가? 토지가 비옥하고 물이 좋으니 단지 부가옹(富家翁)은 될 수 있겠구나."
"텅 빈 섬에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대체 누구와 더불어 사신단 말씀이오?"
사공의 말이었다.
"덕(德)이 있으면 사람이 절로 모인다네. 덕이 없을까 두렵지, 사람이 없는 것이야 근심할 것이 있겠나?"
이 때, 변산(邊山)에 수천의 군도(群盜)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각 지방에서 군사를 징발하여 수색을 벌였으나 좀처럼 잡히지 않았고, 군도들도 감히 나가 활동을 못 해서 배고프고 곤란한 판이었다. 허생이 군도의 산채를 찾아가서 우두머리를 달래었다.
"천 명이 천 냥을 빼앗아 와서 나누면 하나 앞에 얼마씩 돌아가지요?"
"일 인당 한 냥이지요."
"모두 아내가 있소?"
"없소."
"논밭이 있소?"
군도들이 어이없어 웃었다.
"땅이 있고 처자식이 있는 놈이 무엇 때문에 괴롭게 도둑이 된단 말이오?"
"정말 그렇다면, 왜 아내를 얻고, 집을 짓고, 소를 사서 논밭을 갈고 지내려 하지 않는가? 그럼 도둑놈 소리도 안 듣고 살면서, 집에는 부부의 낙(樂)이 있을 것이요, 돌아다녀도 잡힐까 걱정을 않고 길이 의식이 요족을 누릴 텐데."
"아니, 왜 바라지 않겠소? 다만 돈이 없어 못할 뿐이지요."
허생은 웃으며 말했다.
"도둑질을 하면서 어찌 돈을 걱정할까? 내가 능히 당신들을 위해서 마련 할 수 있소. 내일 바다에 나와 보오. 붉은 깃발을 단 것이 모두 돈을 실은 배이니, 마음대로 가져가구려."
허생이 군도와 언약하고 내려가자, 군도들은 모두 그를 미친 놈이라고 비웃었다.
이튼날, 군도들이 바닷가에 나가 보았더니, 과연 허생이 삼십만 냥의 돈을 싣고 온 것이었다. 모두들 대경(大驚)해서 허생 앞에 줄지어 절했다.
"오직 장군의 명령을 따르겠소이다."
"너희들, 힘껏 백 냥도 못 지면서 무슨 도둑질을 하겠느냐? 인제 너희들이 양민(良民)이 되려고 해도, 이름이 도둑의 장부에 올랐으니, 갈 곳이 없다. 내가 여기서 너희들을 기다릴 것이니, 한 사람이 백 냥씩 가지고 가서 여자 하나, 소 한 필을 거느리고 오너라."
허생의 말에 군도들은 모두 좋다고 흩어져 갔다.
허생은 몸소 이천 명이 1 년 먹을 양식을 준비하고 기다렸다. 군도들이 빠짐없이 모두 돌아왔다. 드디어 다들 배에 싣고 그 빈 섬으로 들어갔다. 허생이 도둑을 몽땅 쓸어 가서 나라 안에 시끄러운 일이 없었다.
그들은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대(竹)를 엮어 울을 만들었다. 땅기운이 온전하기 때문에 백곡이 잘 자라서, 한 해나 세 해만큼 걸러 짓지 않아도 한 줄기에 아홉 이삭이 달렸다. 3 년 동안의 양식을 비축해 두고, 나머지를 모두 배에 싣고 장기도(長崎島)로 가져가서 팔았다. 장기라는 곳은 삼십만여 호나 되는 일본(日本)의 속주(屬州)이다. 그 지방이 한참 흉년이 들어서 구휼하고 은 백만 냥을 얻게 되었다.
허생이 탄식하면서,
"인제 나의 조그만 시험이 끝났구나."
하고, 이에 남녀 이천 명을 모아 놓고 말했다.
"내가 처음에 너희들과 이 섬에 들어올 때엔 먼저 부(富)하게 한 연후에 따로 문자를 만들고 의관(衣冠)을 새로 제정하려 하였더니라. 그런데 땅이 좁고 덕이 엷으니, 나는 인제 여기를 떠나련다. 다만, 아이들을 낳거들랑 오른손에 숟가락을 쥐고, 하루라도 먼저 난 사람이 먼저 먹도록 양보케하여라."
다른 배들을 모조리 불사르면서,
"가지 않으면 오는 이도 없으렷다."
하고 돈 오십만 냥을 바다 가운데 던지며,
"바다가 마르면 주어 갈 사람이 있겠지. 백만 냥은 우리 나라에도 용납할 곳이 없거늘, 하물며 이런 작은 섬에서랴!"
했다.그리고 글을 아는 자들을 골라 모조리 함께 배에 태우면서,"이 섬에 화근을 없애야 되지." / 했다.
허생은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난하고 의지 없는 사람들을 구제했다. 그러고도 은이 십만 냥이 남았다.
"이건 변씨에게 갚을 것이다."
허생이 가서 변씨를 보고
"나를 알아보시겠소?"
하고 묻자, 변씨는 놀라 말했다.
"그대의 안색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으니, 혹시 만 냥을 실패 보지 않았소?"
허생이 웃으며,
"재물에 의해서 얼굴에 기름이 도는 것은 당신들 일이오. 만 냥이 어찌 도(道)를 살찌게 하겠소?"
하고, 십만 냥을 변씨에게 내놓았다.
"내가 하루 아침의 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글읽기를 중도에 폐하고 말았으니, 당신에게 만 냥을 빌렸던 것이 부끄럽소."
변씨는 대경해서 일어나 절하여 사양하고, 십분의 일로 이자를 쳐서 받겠노라 했다. 허생이 잔뜩 역정을 내어,
"당신은 나를 장사치로 보는가?"
하고는 소매를 뿌리치고 가 버렸다.
변씨는 가만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허생이 남산 밑으로 가서 조그만 초가로 들어가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 한 늙은 할미가 우물터에서 빨래하는 것을 보고 변씨가 말을 걸었다.
"저 조그만 초가가 누구의 집이오?"
"허 생원 댁입지요. 가난한 형편에 글공부만 좋아하더니, 하루 아침에 집을 나가서 5 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으시고, 시방 부인이 혼자 사는데, 집을 나간 날로 제사를 지냅지요."
변씨는 비로소 그의 성이 허씨라는 것을 알고 탄식하며 돌아갔다.
이튼날, 변씨는 돈을 모두 가지고 그 집을 찾아가서 돌려 주려 했으나, 허생은 받지 않고 거절했다.
"내가 부자가 되고 싶었다면 백만 냥을 버리고 십만 냥을 받겠소? 이제부터는 당신의 도움으로 살아가겠소. 당신은 가끔 나를 와서 보고 양식이나 떨어지지 않고 옷이나 입도록 하여 주오. 일생을 그러면 족하지요. 왜 재물 때문에 정신을 괴롭힐 것이오?"
변씨가 허생을 여러 가지로 권유하였으나, 끝끝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변씨는 그 때부터 허
생의 집에 양식이나 옷이 떨어질 때쯤 되면 몸소 찾아가 도와 주었다. 허생은 그것을 흔연히 받아들였으나, 혹 많이 가지고 가면 좋지 않은 기색으로,
"나에게 재앙을 갖다 맡기면 어찌하오?"
하였고, 혹 술병을 들고 찾아가면 아주 반가워하며 서로 술잔을 기울여 취하도록 마셨다.
이렇게 몇 해를 지나는 동안에 두 사람 사이의 정의가 날로 두터워 갔다. 어느 날, 변씨가 5 년 동안에 어떻게 백만 냥이나 되는 돈을 벌었던가를 조용히 물어 보았다. 허생이 대답하기를,
"그야 가장 알기 쉬운 일이지요. 조선이란 나라는 배가 외국에 통하질 않고, 수레가 나라 안에 다니질 못해서, 온갖 물화가 제자리에 나서 제자리에서 사라지지요. 무릇, 천 냥은 적은 돈이라 한 가지 물종(物種)을 독점할 수 없지만, 그것을 열로 쪼개면 백 냥이 열이라, 또한 열 가지 물건을 살 수 있겠지요. 단위가 작으면 굴리기가 쉬운 까닭에, 한 물건에서 실패를 보더라도 다른 아홉 가지의 물건에서 재미를 볼 수 있으니, 이것은 보통 이(利)를 취하는 방법으로 조그만 장사치들이 하는 짓 아니오? 대개 만 냥을 가지면 족히 한 가지 물종을 독점할 수 있기 때문에, 수레면 수레 전부, 배면 배를 전부, 한 고을이면 한 고을을 전부, 마치 총총한 그물로 훑어 내듯 할 수 있지요. 뭍에서 나는 만 가지 중에 한 가지를 슬그머니 독점하고, 물에서 나는 만 가지 중에 슬그머니 하나를 독점하고, 의원의 만 가지 약재 중에 슬그머니 하나를 독점하면, 한 가지 물종이 한 곳에 묶여 있는 동안 모든 장사치들이 고갈될 것이매, 이는 백성을 해치는 길이 될 것입니다. 후세에 당국자들이 만약 나의 이 방법을 쓴다면 반드시 나라를 병들게 만들 것이오."
"처음에 내가 선뜻 만 냥을 뀌어 줄 줄 알고 찾아와 청하였습니까?"
허생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당신만이 내게 꼭 빌려 줄 수 있었던 것은 아니고, 능히 만 냥을 지닌 사람치고는 누구나 다 주었을 것이오. 내 스스로 나의 재주가 족히 백만 냥을 모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운명은 하늘에 매인 것이니, 낸들 그것을 어찌 알겠소? 그러므로 능히 나의 말을 들어 주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라, 반드시 더욱더 큰 부자가 되게 하는 것은 하늘이 시키는 일일 텐데 어찌 주지 않았겠소? 이미 만 냥을 빌린 다음에는 그의 복력에 의지해서 일을 한 까닭으로, 하는 일마다 곧
성공했던 것이고, 만약 내가 사사로이 했었다면 성패는 알 수 없었겠지요."
변씨가 이번에는 딴 이야기를 꺼냈다.
"방금 사대부들이 남한산성(南漢山城)에서 오랑캐에게 당했던 치욕을 씻어 보고자 하니, 지금이야말로 지혜로운 선비가 팔뚝을 뽐내고 일어설 때가 아니겠소? 선생의 그 재주로 어찌 괴롭게 파묻혀 지내려 하십니까?"
"어허, 자고로 묻혀 지낸 사람이 한둘이었겠소? 우성, 졸수재(拙修齋) 조성기(趙聖期) 같은 분은 적국(敵國)에 사신으로 보낼 만한 인물이었건만 베잠방이로 늙어 죽었고, 반계 거사(磻溪居士) 유형원(柳馨遠) 같은 분은 군량(軍糧)을 조달할 만한 재능이 있었건만, 저 바닷가에서 소요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지금의 집정자들은 가히 알 만한 것들이지요. 나는 장사를 잘 하는 사람이라, 내가 번 돈이 족히 구왕(九王)의 머리를 살 만하였으되 바닷속에 던져 버리고 돌아온 것은, 도대체 쓸 곳이 없기 때문이었지요."
변씨는 한숨만 내쉬고 돌아갔다.

변씨는 본래 이완(李浣) 이 정승과 잘 아는 사이였다. 이완이 당시 어영 대장이 되어서 변씨에게 위항(委巷)이나 여염(閭閻)에 혹시 쓸 만한 인재가 없는가를 물었다. 변씨가 허생의 이야기를 하였더니, 이 대장은 깜짝 놀라면서,
"기이하다. 그게 정말인가? 그이 이름이 무엇이라 하던가?"
하고 묻는 것이었다.
"소인은 그분과 상종해서 3 년이 지니도록 여태껏 이름도 모르옵이다."
"그인 이인(異人)이야. 자네와 같이 가 보세."
밤에 이 대장은 구종들도 다 물리치고 변씨만 데리고 걸어서 허생을 찾아갔다. 변씨는 이 대장을 문 밖에 서서 기다리게 하고 혼자 먼저 들어가서, 허생을 보고 이 대장이 몸소 찾아온 연유를 이야기했다. 허생은 못 들은 체하고,
"당신 차고 온 술병이나 어서 이리 내놓으시오."
했다. 그리하여 즐겁게 술을 들이켜는 것이었다. 변씨는 이 대장을 밖에 오래 서 있게 하는 것이 민망해서 자주 말하였으나, 허생은 대꾸도 않다가 야심해서 비로소 손을 부르게 하는 것이었다. 이 대장이 방에 들어와도 허생은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않았다. 이 대장은 몸둘 곳을 몰라하며 나라에서 어진 인재를 구하는 뜻을 설명하자, 허생은 손을 저으며 막았다.
"밤은 짧은데 말이 너무 길어서 듣기에 지루하다. 너는 지금 무슨 벼슬에 있느냐?"
"대장이오."
"그렇다면 너는 나라의 신임받는 신하로군. 내가 와룡 선생(臥龍先生) 같은 이를 천거하겠으니, 네가 임금께 아뢰어서 삼고 초려(三顧草廬)를 하게 할 수 있겠느냐?"
이 대장은 고개를 숙이고 한참 생각하더니,
"어렵습니다. 제이(第二)의 계책을 듣고자 하옵니다."
했다.
"나는 원래 '제이'라는 것은 모른다."
하고 허생은 외면하다가, 이 대장의 간청에 못 이겨 말을 이었다.
"명(明)나라 장졸들이 조선은 옛 은혜가 있다고 하여, 그 자손들이 많이 우리 나라로 망명해 와서 정처 없이 떠돌고 있으니, 너는 조정에 청하여 종실(宗室)의 딸들을 내어 모두 그들에게 시집 보내고, 훈척(勳戚) 권귀(權貴)의 집을 빼앗아서 그들에게 나누어 주게 할 수 있겠느냐?"
이 대장은 또 머리를 숙이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어렵습니다."
했다.
"이것도 어렵다, 저것도 어렵다 하면 도대체 무슨 일을 하겠느냐? 가장 쉬운 일이 있는데, 네가 능히 할 수 있겠느냐?"
"말씀을 듣고자 하옵니다."
"무릇, 천하에 대의(大義)를 외치려면 먼저 천하의 호걸들과 접촉하여 결탁하지 않고는 안 되고, 남의 나라를 치려면 먼저 첩자를 보내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는 법이다. 지금 만주 정부가 갑자기 천하의 주인이 되어서 중국 민족과는 친근해지지 못하는 판에, 조선이 다른 나라보다 먼저 섬기게 되어 저들이 우리를 가장 믿는 터이다. 진실로 당(唐)나라, 원(元)나라 때처럼 우리 자제들이 유학 가서 벼슬까지 하도록 허용해 줄 것과, 상인의 출입을 금하지 말도록 할 것을 간청하면, 저들도 반드시 자기네에게 친근하려 함을 보고 기뻐 승낙할 것이다. 국중의 자제들을 가려 뽑아 머리를 깎고 되놈의 옷을 입혀서, 그 중 선비는 가서 빈공과(賓貢科)에 응시하고, 또 서민은 멀리 강남(江南)에 건너가서 장사를 하면서, 저 나라의 실정을 정탐하는 한편, 저 땅의 호걸들과 결탁한다면 한번 천하를 뒤집고 국치(國恥)를 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명나라 황족에서 구해도 사람을 얻지 못할 경우, 천하의 제후(諸侯)를 거느리고 적당한 사람을 하늘에 천거한다면, 잘 되면 대국(大國)의 스승이 될 것이고, 못 되어도 백구지국(伯舅之國)의 지위를 잃지 않을 것이다."
"사대부들이 모두 조심스럽게 예법(禮法)을 지키는데, 누가 변발(辯髮)을 하고 호복(胡服)을 입으려 하겠습니까?"
허생은 크게 꾸짖어 말했다.
"소위 사대부란 것들이 무엇이란 말이냐? 오랑캐 땅에서 태어나 자칭 사대부라 뽐내다니, 이런 어리석을 데가 있느냐? 의복은 흰옷을 입으니 그것이야말로 상인(商人)이나 입는 것이고, 머리털을 한데 묶어 송곳같이 만드는 것은 남쪽 오랑캐의 습속에 지나지 못한데, 대체 무엇을 가지고 예법이라 한단 말인가? 번오기(樊於期)는 원수를 갚기 위해서 자신의 머리를 아끼지 않았고, 무령왕(武靈王)은 나라를 강성하게 만들기 위해서 되놈의 옷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이제 대명(大明)을 위해 원수를 갚겠다 하면서, 그까짓 머리털 하나를 아끼고, 또 장차 말을 달리고 칼을 쓰고 창을 던지며, 활을 당기고 돌을 던져야 할 판국에 넓은 소매의 옷을 고쳐 입지 않고 딴에 예법이라고 한단 말이냐? 내가 세 가지를 들어 말하였는데, 너는 한 가지도 행하지 못한다면서 그래도 신임받는 신하라 하겠는가? 신임받는 신하라는 게 참으로 이렇단 말이냐? 너 같은 자는 칼로 목을 잘라야 할 것이다."
하고 좌우를 돌아보며 칼을 찾아서 찌르려 했다. 이 대장은 놀라서 이어나 급히 뒷문으로 뛰쳐나가 도망쳐서 돌아갔다.
이튼날, 다시 찾아가 보았더니, 집이 텅 비어 있고, 허생은 간 곳이 없었다.

'斷想'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과장의 투자일지  (1) 2011.11.21
Band of Brothers  (1) 2011.03.07
Black Swan  (1) 2010.11.02
보험사의 자산운용 - 4  (18) 2010.09.27
보험사의 자산운용 - 3  (1) 2010.09.22

[Consumer Spending] Personal Income and Spending

美경제지표 2011. 4. 7. 16:43 Posted by sloan_sjchoi
지금까지 고용, 생산, 주택의 대표적인 지표들에 대해서 알아 보았다. 이번에는 소비와 관련된 지표들, 즉 개인의 소득이나 지출, 소매 판매액, 소비자들의 심리나 경기 전망 등에 대해서 공부해 보자.

미국 경제는 개인의 소비가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계에 의하면, GDP의 2/3가 밖에서 외식하고 옷 사입고 병원가서 치료 받는데에서 나오고(Consumer Spending), 15% 정도가 기업이 공장 짓고 기계 사는데서(Private Investment), 나머지는 정부가 다리 만들고 학교 세우고 군인들 봉급 주고(Government Spending) 뭐 그런데서 나온다고 한다. * Y = C + I + G에서 C의 비중은 통상 67%에서 72% 정도의 레인지에서 움직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외부문은 제외했다. 심플하게 가자.)

Personal Income and Spending은 Department of Commerce 산하의 BEA(Bureau of Economic Analysis)에서 전월 수치를 매월 4주차에 발표한다. 사실 고용지표나 소매판매 등의 지표들이 미리 나오기 때문에 개인소득과 지출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 그래서 영향력은 다소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Headline 뒤에 나오는 Core PCE price index가 Fed의 물가지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 리포트의 중요성은 무시할 수 없다. (http://www.bea.gov/newsreleases/national/pi/pinewsrelease.htm)



 
1. Personal Income
자, 그러면 개인이 쓰는 돈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가? 한번 분해해서 살펴보자. 그 전에 여기서 말하는 Personal Income은 세전(before tax) 소득임을 알고 가자. 세금이 공제된 소득은 DPI(Disposable Personal Income)인데 헷갈리면 안된다.

소득의 원천은 7개 정도로 구분할 수 있다. (Wharton school 출판사에서 나온 "The Secrets of Economic Indicators" by Baumohl을 참고했다.)

1. Wages and Salaries: 봉급쟁이들이 받는 봉급 전체의 56% 정도를 차지한다.
2. Proprietor's income: 자영업자들의 소득이다. 의사, 변호사, 컨설턴트 등 전문직의 수입도 여기에 포함된다. 전체의 8% 수준
3. Rental income: 임대소득, 0.5%
4. Dividend income: 주주로서 받는 배당소득, 4.5%
5. Interest income: 채권자로서 받는 이자소득, 9%
6. Transfer payments: 이전소득으로 불리는 정부나 지자체 등이 지급하는 소득이다. 비중이 12.5%로 꽤 크다.
7. Other labor income: 위의 6개 항목에 안 잡히는 소득, 9.5%

2. Personal Spending (Personal Consumption Expenditures)
당연한 이야기지만 봉급쟁이들 월급 받으면 둘 중에 하나를 한다. 쓰거나 저축하거나. OECD의 주요 국가별 가계저축률을 보니 미국은 생각보다 많은 5.7%를 저축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2.7%에 불과하다. 금리가 낮으니 은행에 저축하기 보다는 주식 등에 투자하는 사례가 늘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PCE의 주요 항목은 크게 3가지 항목으로 구분할 수 있다.

1. Durable goods: 내구재, 사면 평균적으로 최소 3년 이상은 쓰는 물건들이다. 자동차, 냉장고, TV 등등. PCE의 10%를 차지한다고 한다.
2. Nondurable goods: 비내구재, 음식류, 의류, 책 등으로 전체의 25% 정도의 비중
3. Services: 1960년대에는 40% 정도의 비중이었지만 최근 65%까지 올라올 만큼 빠르게 성장하는 항목이다. 의료비, 미장원 비용, 변호사비, 공연 관람비 등이 있다.

* 박스로 묶어 놓은 항목들이 개인소득과 개인지출 항목이다.

* Core PCE Price index는 inflation에 해당하는 항목이므로 다음에 물가 지표를 설명할 때 같이 다루도록 하겠다.

[4월]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을 보자.

채권시황 2011. 4. 5. 10:56 Posted by sloan_sjchoi
전월 채권시장은 일본 대지진이라는 예상치 못한 이벤트로 국고10-6이 3.57%까지 하락하는 강세장을 시현했다. 물론 강한 증시 회복세와 미국 경기 회복, 여전한 물가 불안감으로 다시 3.7% 레벨 위로 상승 마감하였지만 4월 시작부터 금리가 하락하면서 2월 중순부터 이어지던 "롱" 분위기가 4월에도 이어지는 형국이다.

 


내가 생각하는 4월 채권 시장의 강세 전망의 이유는 3가지 정도이다.

1)물가
시장은 3월 CPI가 5%로 나와도 별로 놀랄 일이 아니었는데 실제 결과는 4.7%로 나와버렸으니 연초 금리 상승을 견인했던 물가 급등과 이에 따른 정책금리 인상 속도에 대한 부담이 해소되는 효과가 좀 있었을 것이다. SK가 휘발유 값을 내렸고 뜻하지 않게 무상급식의 효과도 물가 안정에 기여하는 등 정부의 전방위 물가 관리 정책들이 효과를 보이고 있다. 3월을 정점으로 전월비 물가 상승률이 둔화되는 점을 고려하면 3월 4.7%가 연중 고점일 확률도 배제할 수 없다. 줄어든 물가 부담, 확실히 채권시장에는 호재이다.

2)주식
일본 지진 이후 주가가 V자형 반등세를 시현했다. 같은 기간 금리는 상승했지만 전고점인 4.10%에는 한참 모자란 반면, KOSPI는 전고점인 2100 선까지 가파른 상승세를 시현했다. 주식 시장의 격언이 있다. "남들이 오를때 같이 못 오른 놈은 남들 떨어질 때는 더 많이 떨어진다." 주가는 사실 기업실적 등의 micro한 가격 factor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에 macro 변수인 금리와 같은 레벨에서의 분석은 많은 주의를 요한다. 그러나 작년 하반기 이후 높아진 상관성(그래프 참조)을 고려할 때 최근의 decoupling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 4월이 주식 시장의 추가 상승을 위한 동력 확보 기간이라면, 따라서 주가가 조정을 보이고 횡보하는 국면을 보인다면 그 동안 따라 오르지 못한 금리가 주가를 무시하고 올라가기는 힘들 것이다.

3)환율
지난달 시황에서 전세금 마련을 위한 서민들의 대출 증가와 이에 따른 이자 부담 증가에 대해 언급하면서 금통위에서의 금리 동결을 전망한 바 있다. 결과는 25bp 인상으로 끝이 났지만 정부가 가계 부채를 무시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최근의 급격한 원달러 하락은 어떻게 해석을 해야할까? 이제 고환율 정책을 통한 대기업 밀어주기 보다는 - 현대차, 기아차 주가를 봐라. - 물가안정을 위해 이제 원화 절상을 용인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이 좌클릭 한 것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한은의 baby step 보폭이 원화 절상을 이유로 두달에서 세달, 네달로 길어진다면 carry를 무시할 수 없는 매니저들이 마음 편하게 곳간을 비워 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금리가 올라올 때마다 채권을 살 수 밖에 없다.

*에필로그
그렇다고 무작정 금리가 계속 내려간다는 말은 아니다. 3% 정책금리에 통안 1년이 3.55%이고 CD91이 3.4%다. 10-6이 3.5% 간다고 베팅하기는 무리가 따를 수 밖에 없다. 그러면 뭐 사냐고? 장기물 밖에 답이 없다. 그래서 오늘도 10-3과 10-5는 빠지고 있다. 4월도 굿럭~~



'채권시황' 카테고리의 다른 글

[6월] 대외불확실성  (0) 2011.06.09
[5월] 유동성  (0) 2011.04.29
[3월] 스태그플래이션  (3) 2011.03.01
[2월] 금리가 도대체 언제까지 오를까?  (2) 2011.02.07
정책금리 동결後  (3) 2010.10.14
S&P Case-Shiller 지수는 S&P가 발표하는 주택지표로서 보스턴 근교의 명문 여대 Wellesley大의 교수 Karl Case와 Yale大 교수 Robert Shiller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지표이다. 1980년대 보스턴 주택 시장을 연구하던 Case 교수가 경제버블을 연구하던 Shiller교수와 함께 부동산 지수를 개발했는데 이 지수를 fiserv라는 Financial Services Technology Solutions을 제공하는 업체가 매입한 뒤 S&P에 판매하면서 S&P Case-Shiller index가 된 것이다.

매월 마지막 주 화요일에 두 달전 자료가 발표된다. 올해 3월에는 3월 29일(화)에 1월 Case-Shiller 지수가 발표되었다. 2000년 1월 집값을 100으로 기준 잡고 10대 도시, 20대 도시 총괄지수를 산출한다. 20개는 너무 많고 10개만 알고 넘어가자.

1. 보스턴
2. 시카고
3. 덴버
4. 라스베가스
5. LA
6. 마이애미
7. 뉴욕
8. 샌디에고
9. 샌프란시스코
10. 워싱턴DC

아래 표을 보면 발표된 '11년 1월 10-city composite은 전년 동월비 2% 하락했고, 20-city composite은 3.1% 하락했다. 샌디에고와 워싱턴DC만 상승했을 뿐이다.


아래 그래프의 1987년 이후 추이를 보아도 주택 가격 하락이 진정된 기미만 보일 뿐 본격적인 주택 가격 회복의 움직임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11년 들어 반등의 탄력을 잃은 기존주택, 신규주택판매 등 다른 주택 지표와 함께 Case-Shiller 지수도 dismal한 주택시장의 분위기를 잘 반영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첨부 파일을 열어서 확인하라.